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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 사이의 거리 — 가족 카르마를 상징하는 장면
“말하지 못한 침묵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부녀. 이 장면은 세대를 잇는 감정의 간극과 가족 카르마의 시작점을 상징한다.”
낡은 벽 앞에서 떨어져 앉아 있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은 세대 간의 오해, 말하지 못한 감정, 대물림된 패턴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이미지는 ‘아버지의 부재와 깨달은 업(業)’이라는 글의 주제 — 가족 카르마, 반복되는 감정의 연결고리, 그리고 공감을 통한 치유 — 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카르마 시리즈의 첫 번째 글은 [가족과 공감] 카테고리의 글입니다.
카르마란 무엇인가: 세대를 잇는 인과와 감정의 에너지
‘카르마(Karma)’는 흔히 ‘업보’나 ‘벌’로 단순하게 이해되곤 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훨씬 깊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행동(Action)’을 뜻하는 카르마는,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남긴 행위의 흔적, 즉 에너지의 방향성을 말합니다. 그 에너지는 시간과 세대를 넘어 순환하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나 관계의 패턴으로 드러납니다.
이 개념은 사실 우리 문화 속에서도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사자성어 ‘인과응보(因果應報)’ —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가 따른다는 말, 그리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 역시 같은 맥락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카르마는 단순한 ‘벌’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에너지, 그리고 삶이 ‘이해되지 못한 어떤 것’을 스스로 깨닫고자 하는 내적 반복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가족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DNA뿐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상처, 불안, 두려움, 혹은 세대를 이어 내려온 결핍의 패턴 — 이 모든 것이 카르마의 일부로,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의 말투와 습관, 관계의 방식 속에 스며듭니다.
결국 카르마란 ‘운명’이 아니라 이해되지 못한 감정들이 다시 만나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반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의식적인 공감’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고, 그 고통의 근원을 이해하려는 순간 — 그때 비로소 카르마의 순환은 멈추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프롤로그: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질문과 대물림된 패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픔과 함께 찾아온 것은 집안을 감도는 낯선 고요함이었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자다가도 아버지의 목소리에 번뜩 눈이 떠지고, 바로 아버지에게 달려가려고 침대에서 일어서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 순간, ‘뭐지?’ 하는 생각이 들고, 분명히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는데… 잠시 후, 아버지가 항상 계시던 곳에 이제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사실이,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 낯설기만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버지와 제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버지의 특정한 고집, 쉽게 타협하지 않는 태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침묵 등, 저는 그런 모습들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반대의 삶을 살아왔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순간, 낯선 환경에 놓였을 때, 나의 입에서 아버지의 말투가 흘러나왔습니다. 혹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방식대로 내가 상황을 처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단단한 믿음이 흔들리자, 명확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왜 그런 식으로 엮여 있었을까? 이 반복되는 패턴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은 저를 카르마(業) 라는 개념으로 이끌었고, 단순히 ‘운명’이라 치부했던 가족 관계 속의 깊은 숙제를 마주하게 했습니다.
가족 카르마의 정의: DNA를 넘어선 심리적 유산
카르마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단순한 인과의 법칙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에너지가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심리적·영적 유산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가족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DNA뿐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미해결된 상처, 그들의 불안정했던 어린 시절, 혹은 집안에 만연했던 특정한 결핍(재정적, 정서적)과 같은 ‘업보의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상속받습니다.
우리 가족의 경우, 그것은 ‘침묵 속의 갈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지 않으셨고, 그 침묵은 가족들에게 불안과 소외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패턴을 끊어내려 애썼지만, 때때로 제가 중요한 감정을 회피하며 침묵하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저는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가족 카르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 패턴을 이해하고, 여기서 멈춰라.”

세월 속에서 멀어지고 닮아간 부녀의 거리
“80세 아버지와 50세의 딸. 세월은 멀어지게도 하고, 닮아가게도 한다. 이 장면은 세대를 잇는 감정의 고리와 가족 카르마의 잔향을 담고 있다.”
벽지의 벗겨진 질감과 낡은 공간은 세월의 흐름을 상징하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진 않았지만 떨어져 앉아 있는 부녀의 모습은 감정의 거리와 이해되지 못한 카르마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이 이미지는 아버지의 생을 ‘한 인간의 숙제’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딸이 그 카르마의 고리를 이해하려는 여정을 시각적으로 담아냅니다.
고통의 연결고리: 아버지와 나, 미해결된 카르마의 발현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애쓰고 또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부재 후에서야, 저는 그분을 ‘단지 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완고함은 평생 그분을 괴롭혔던 어떤 상실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업(業) 에서 비롯된 방어 기제였을지도 모른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그분이 표현하지 못했던 분노, 감추려 했던 약함, 그것들은 성격이 아니라 그분 자신도 풀지 못했던 미해결된 카르마의 발현이었던 것입니다.
나의 카르마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 패턴에 대해 반발하고 고통받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 나는 아버지를 비판하고 멀리하며 이 패턴을 끊으려 했지만, 그 비판과 거리가 오히려 아버지의 고통을 증폭시키고 나 자신의 상처를 깊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괴롭히던 카르마와, 그로 인해 내가 고통받았던 카르마는 이해받지 못한 채 맴도는 하나의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공감, 카르마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열쇠
이 고리를 끊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공감이었습니다.
진정한 공감은 아버지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유발했던 ‘고통’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살아생전에는 어려웠던 이 공감의 과정은, 아버지의 삶을 “한 인간이 고군분투하며 풀어내려 했던 숙제”로 바라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옳고 그름’의 잣대에서 내려놓고, 그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라는 질문으로 다가갔을 때, 비로소 내 안의 오래된 분노와 억울함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카르마는 강력하지만, 의식적인 행위로 끊어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카르마를 판단 대신 공감으로 대하는 그 순간, 그 업보는 더 이상 나에게 부정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그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선택은 곧 나의 카르마를 종결짓는 평화로운 행위가 되었습니다.

닮음의 시작 — 조심스러운 이해의 순간
“오랜 시간 쌓여온 거리감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순간. 아버지와 딸은 서로에게서 익숙한 표정과 온기를 발견하며 닮았다는 사실을 처음 인정하기 시작한다.”
낡은 벽 앞, 자연스레 마주 앉은 아버지와 딸은 조심스럽지만 따뜻하게 서로를 바라봅니다. 표정 속에는 과거의 상처가 아닌, 이해로 이어지는 새로운 감정의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장면은 닮음을 인정하는 과정의 ‘첫 걸음’이자, 세대의 카르마가 변화하는 전환점을 상징합니다.
에필로그: 남겨진 자의 새로운 시작
아버지와의 이별은 끝이 아니라, 나의 세대에서 가족 카르마를 마무리 지을 기회였습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은 미완의 숙제였지만, 저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성장의 기회’로 재정의합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의 침묵을 물려받지 않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저만의 따뜻한 연결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아버지를 온전히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곧 나의 삶을 고통스러운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일이었음을. 당신도 당신의 가족 카르마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판단 대신 ‘공감’의 눈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발견한, 가족과 공감에 대한 가장 깊은 깨달음입니다.
가볍게, 그러나 깊게. 그리고, 이해로 이어지기를.
닮음을 인정하는 순간 — 화해로 이어진 미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결국 닮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부녀. 이 미소 속에는 이해, 용서, 그리고 세대의 카르마를 마무리하는 평온함이 담겨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멀어져 있던 부녀가 이제 서로를 향해 웃고 있습니다. 표정과 분위기는 아버지의 과거와 딸의 현재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서로의 닮음을 받아들이는 이 장면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감정의 카르마를 ‘이해와 사랑’으로 마무리짓는 상징적인 엔딩입니다.
다음 카르마 시리즈 #2 ‘풀어야 할 인연의 숙제: 일상 관계에 반복되는 고통의 패턴을 끊는 법’에서는 [사람과 관계] 카테고리로 이동합니다. 가족을 넘어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고통의 패턴을 ‘인연의 숙제’로 해석하고, 이를 의식적인 공감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탐구합니다. [카르마 시리즈 #2]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