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경계

팀워크는 왜 점점 불편한 가치가 되었는가

1월 8, 2026
서로 다른 사람들이 원을 이루어 손을 겹친 채 아래에서 위를 내려다보는 장면. 책임과 선택으로 연결된 팀워크를 상징하는 이미지

프롤로그: 팀워크의 역설 — 개인 존중과 공동의 목표 사이의 균열

최근 〈야구여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오래전부터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여러 명의 선수가 동시에 움직이는 스포츠에서 팀워크는 선택이 아니라 전제입니다. 개인의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그 재능은 오히려 팀의 리듬을 깨뜨립니다. 야구는 특히 그렇습니다. 한 명의 홈런보다,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며 몸을 움직이는 연속된 선택들이 경기를 만듭니다.

블랙 퀸즈의 공격이 시작되면, 관중석과 더그아웃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모두가 하나의 리듬으로 묶입니다. 선수의 이름을 부르며 화이팅을 외치고, “한 번 더 가자”, “할 수 있다”, “기죽지 마”, “과감하게 보여줘”라는 말들이 파도처럼 이어집니다. 그 외침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집단의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감독과 코치는 겉으로 보기엔 차분해 보이지만, 그들의 시선은 누구보다 예민합니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기량과 오늘의 컨디션, 방금 전 플레이의 미세한 어긋남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는 목소리를 높여 지시하고, 때로는 짧은 손짓 하나로 방향을 수정합니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는 부분과 부족한 지점을 동시에 인식하게 됩니다. 혼나는 장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정확한 타이밍에 전달되는 명확한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팀을 제압하는 정확한 팀플레이가 나오는 순간, 기쁨은 개인에게 머물지 않습니다. “잘했다”는 말이 특정 선수에게만 향하지 않고, “우리, 다시 한 번 더 가보자”라는 다음 목표로 곧장 이어집니다. 잘했기 때문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잘했기 때문에 더 잘해보자는 분위기. 그 장면에서 저는 팀워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조직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회사라는 공간 역시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와 조직은 다르지만, 성과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치고 나가고, 누군가는 뒤에서 받쳐주며, 누군가는 흐름이 무너질 때 방향을 다시 잡습니다. 이 모든 역할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으면 결과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팀워크’라는 단어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팀워크를 말하는 순간, 곧바로 ‘꼰대’, ‘구시대적 사고’, ‘개인 존중을 모르는 태도’라는 낙인이 따라붙습니다. 마치 팀워크라는 말 자체가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한 도구처럼 오해받는 장면을 자주 목격합니다. 개인의 사정과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 공동의 목표를 이야기하는 순간 불편함이 먼저 올라오는 이 분위기는 과연 자연스러운 변화일까요.

〈야구여왕〉 속 블랙 퀸즈의 장면은, 저에게 이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팀워크는 개인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필요한 순간 서로를 보완하며, 잘했을 때는 함께 기뻐하고 부족할 때는 정확히 짚어주는 것. 그것이 팀워크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어쩌다 이 단어를 불편해하게 되었을까요.

팀워크는 희생을 강요하는 구호가 아니라, 성과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무너질 때, 개인의 자유는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으로 돌아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팀워크가 사라진 조직이 얼마나 쉽게 방향을 잃는지, 그리고 그 공백을 누가 가장 많이 감당하게 되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팀워크의 본질: 리더십이 아닌 팔로워십과 구조의 합

조직에서 팀워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리더의 역량을 먼저 떠올립니다. 좋은 리더가 있으면 팀워크가 살아나고, 리더가 부족하면 조직이 흔들린다고 믿습니다. 물론 리더십은 중요합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기준을 세우며, 결정을 내리는 역할은 분명히 리더의 몫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저는 점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팀워크는 리더 한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리더십이라는 축 위에 쌓이는 구조와 태도의 합입니다.

리더십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팀워크는 그 방향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상당 부분은 리더가 아닌, 팀원 각자의 팔로워십에서 나옵니다.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는 태도, 일이 몰릴 때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 대신 한 발 더 나오는 선택, 팀의 목표를 개인 일정과 조율하려는 의지. 이런 태도가 없으면 팀워크는 아무리 그럴듯한 구호를 붙여도 공허해집니다.

그래서 새로운 팀이 만들어질 때, 혹은 새로운 리더가 팀을 맡게 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아이스브레이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브레이킹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훨씬 더 본질적인 행위에 가깝습니다.

아이스브레이킹은 하나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함께 책임진다.

 

이 암묵적인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 그것이 바로 아이스브레이킹의 본질입니다.

사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해야겠다’라고 의식하며 일을 시작하는 리더는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리더는 본능적으로 분위기와 긴장을 가다듬고, 각자의 역할과 온도를 맞추려 합니다. 그것이 곧 아이스브레이킹입니다.

매일 점심을 함께 먹으며 오가는 가벼운 대화, 팀원 각자의 성향과 의지를 파악하기 위한 스몰 토크, 각자의 업무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과 관찰, 그리고 결과물을 함께 보며 방향을 조율하는 과정들. 이 모든 것이 따로 이름 붙이지 않아도, 이미 아이스브레이킹의 방식입니다.

결국 아이스브레이킹은 친해지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서로의 성향을 알고, 책임의 경계를 확인하며, ‘이 팀에서 나는 어디까지 함께 가야 하는 사람인가’를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생략된 팀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위기의 순간에 쉽게 흩어집니다. 반대로 이 준비가 되어 있는 팀은, 갈등이 생겨도 다시 목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팀워크란 결국 친밀감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이해와 태도의 공유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현실: ‘최소한의 약속’이 불필요한 부담으로 해석될 때

팀 구성과 역할에 대한 논의를 마친 뒤, 저는 한동안 의도적으로 한 발 물러섰습니다. 바로 피드백을 쏟아내기보다, 팀원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일을 받아들이고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충분히 설명했지만, 팀워크는 말이 아니라 행동의 리듬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저는 팀원들에게 반복해서 한 가지를 설명하려 노력했습니다. 왜 이 일을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 업무가 전체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지시를 내리기보다 맥락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당장의 결과보다, 팀이 장기적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는 감각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구조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는지를 이해하길 바랐습니다.

제가 전달한 메시지는 사실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업무는 단발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 진행 중 변동 사항이나 문제가 생기면, 개인의 판단보다 공유와 확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일정에 맞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소규모 팀일수록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통제도, 압박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함께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약속이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각자 맡은 일을 잘하자”는 수준의 협업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힘을 합한다’는 의미는, 각자의 업무를 무사히 끝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공부하고, 다음 단계의 일을 준비하는 태도까지 포함합니다. 일이 없을 때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몰릴 순간을 대비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팀워크의 연장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방향이 크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직에서 너무 당연하게 공유되어야 할 태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제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의도를 설명해도, 구조를 공유해도, 어떤 팀원에게는 그것이 ‘함께 가기 위한 약속’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담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스스로를 보완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책임의 확대가 되었고, 우선순위를 맞추자는 요청은 개인 일정에 대한 간섭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과연 팀워크란, 어디까지를 함께 감당하자는 합의일까요. 그리고 이 합의가 무너질 때, 조직은 무엇으로 유지되는 걸까.

태도의 방향성: 모면하려는 생존 방식과 머무르려는 생존 방식

그 과정을 지나오며 저는 두 가지 전혀 다른 태도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일을 대하는 자세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팀원은 말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회의 자리에서도 주로 듣는 편이었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설명해주면 그 흐름을 이해하려 애썼고, 왜 이 일이 필요한지 설명하면 그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결과물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면, 그다음 행동이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을 때도 ‘언젠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지금 처리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움직였습니다.

물론 경험은 부족했고, 결과물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설명해주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능력은 시간이 지나며 쌓을 수 있지만, 태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태도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설명했던 내용이 반복해서 되돌아오고, 이미 공유했던 기준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매번 제가 다시 정리하고, 다시 확인하고, 다시 책임지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성장하려는 태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자리에 머무르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또 다른 팀원의 태도는 처음부터 결이 달랐습니다. 개선의 의지보다 불만이 먼저 보였고, 변화보다는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방어하는 말이 앞섰습니다. 브랜드의 방향, 제품의 맥락, 협업의 구조를 여러 차례 자료로 정리해 공유했지만, 그 내용은 업무 속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해하지 못해서라기보다, 굳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는 판단이 디자이너의 확인 없이 다른 경로로 수정·지시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확인과 공유를 생략한 판단은 작은 효율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팀 내부의 신뢰는 서서히 마모됩니다. 누군가는 침묵하게 되고, 누군가는 자신의 역할이 무력해졌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되었을 때, 저는 비로소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보완하며 버텨보려는 태도였고, 다른 하나는 상황을 관리하며 모면하려는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단순히 개인주의의 확산 때문일까. 아니면 조직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개인이 조직에 기대는 보호 사이의 균열 때문일까.

어쩌면 이것은 ‘요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 앞에서 각자가 선택한 생존 방식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개인주의와 조직 문화: 아무도 팀을 책임지지 않는 기묘한 착시

이 지점에서 저는 요즘 조직 문화의 한 단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팀을 이야기합니다. 회의에서는 협업을 말하고, 슬로건에는 ‘함께’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조금 다릅니다. 각자는 팀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바쁜 시기에도 개인 일정은 절대적으로 우선시되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도 “그건 제 시간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어느 순간 동료의 일은 ‘돕는 일’이 아니라,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할 ‘남의 일’이 됩니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어느 순간부터 ‘개인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개인의 삶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누구도 조직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희생하라고 요구받아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모든 회사의 상황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환경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헌신적으로 팀의 성과를 위해 노력하고, 어떤 이는 그저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자체를 옳고 그름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지점은 바로 여기였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아무런 자부심이나 동기 없이 그 자리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생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역할은 단순히 시간을 제공하는 계약이 아닙니다. 우리는 회사로부터 각자의 임무를 부여받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습니다. 그것은 회사와 개인 사이의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회사 안에서의 ‘나’에게는 지켜야 할 책임과 기준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아주 기본적인 약속마저 쉽게 무시되는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제 개인 일정이 더 중요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이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반복될수록, 팀은 점점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몫만 관리하는 집합체로 변해갑니다. 개인 존중이 팀워크와 전혀 연결되지 않을 때, 조직은 더 이상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개인주의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조직 문화와 개인화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삶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팀 안에서의 역할 역시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 둘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조율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팀워크는 개인을 억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개인 역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상호 책임의 구조입니다. 그 균형이 깨질 때, 우리는 팀워크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도 팀을 책임지지 않는 기묘한 착시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구조적 충돌: 왜 책임을 요구하는 사람이 ‘꼰대’로 낙인찍히는가

이런 상황에서 팀의 방향과 책임을 이야기하면, 리더는 종종 ‘꼰대’가 됩니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말하고, 일정과 결과를 묻고, 누락된 책임을 짚는 순간 그 말은 곧장 권위적 간섭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그 요구는 정말 누군가를 억압하려는 태도일까요. 아니면 팀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요청일까요.

팀워크는 일이 없을 때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여유로울 때는 각자의 방식으로도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일이 몰리고, 누군가의 공백이 생기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비로소 팀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 순간에 누가 한 발 더 나오는가, 누가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삼키는가, 누가 끝까지 책임지는가에서 팀의 진짜 얼굴이 보입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외면하면서도 ‘팀’을 말하는 문화는, 결국 팀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소모의 끝에서, 책임을 묻는 사람만이 ‘꼰대’라는 이름으로 남게 됩니다.

처음 ‘꼰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저 역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답답함, 위계적 문화에 대한 거부감, 세대 간 사고방식의 차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세대 간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조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저는 또 다른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왜 많은 올드 세대들은 결국 ‘꼰대’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가 경험한 환경은 이제 거의 교집합이 없습니다. 일의 방식도, 속도도, 경쟁의 구조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중요한 덕목들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던 교육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누군가 그것을 반복해서 말해주었습니다. 책임, 인내, 준비, 기다림,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편의를 조정하는 태도. 지금은 그 가치들이 낡은 이야기로 취급되거나, 아예 교육의 영역에서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문제는 단순히 ‘옛 세대의 가르침을 알면서도 거부하는 젊은 세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가르침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접해보지 못한 채, 각자의 개성과 권리를 먼저 배우게 된 구조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에서 세대 간의 대화는 종종 막다른 골목에 다다릅니다. 한쪽은 “왜 이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묻고, 다른 한쪽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서로의 질문은 모두 정당하지만, 공유된 기준이 없기에 대화는 쉽게 평행선을 긋습니다.

그래서 리더의 말은 설명이 되기 전에 간섭으로 들리고, 책임을 요구하는 말은 조율이 되기 전에 권위로 인식됩니다. 이것이 바로 ‘꼰대’라는 단어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구조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낙인처럼 작동하는 이유입니다.

리더가 꼰대가 되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팀이 책임의 언어를 잃었을 때, 책임을 말하는 사람만이 꼰대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팀워크는 희생이 아닌,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개인의 선택

팀워크는 개인을 억압하는 규율이 아닙니다. 동시에 개인의 편의만을 절대시하는 느슨한 합의도 아닙니다.

팀워크란 개인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되, 팀의 목표를 함께 인식하고, 필요한 순간에 서로의 부담을 나눌 수 있는 태도입니다. 누군가에게 강요되는 희생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한 뒤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저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자원 안에서 최선을 다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팀워크라고 믿습니다. 조건이 완벽할 때만 작동하는 협업은 팀워크라기보다, 운이 좋은 환경일 뿐입니다. 현실의 조직은 늘 부족하고, 늘 촉박하며, 늘 예상 밖의 변수가 생깁니다. 그때 팀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진짜 팀워크는 인력이 부족해도, 각자의 역량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도 서로의 빈틈을 인식하고 보완하며 함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누군가는 한 발 더 나서고, 누군가는 그 도움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안, 개개인의 경험치와 성장은 반드시 따라옵니다.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 일정이 무너졌을 때 수습해 본 경험, 서로의 역할을 넘나들며 협력해 본 경험은 결국 각자의 커리어 안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팀을 위해 선택한 행동이 결국 개인을 성장시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팀워크를 손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함께 책임을 나누는 경험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혼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성장입니다.

그렇다면 묻게 됩니다. 이렇게 분명한 배움과 성장이 따라오는 경험을, 굳이 외면할 이유가 있을까요.

팀워크는 누군가를 소모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잘 작동하는 팀워크는 결국 모두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희생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으로 유지됩니다.

에필로그: 오늘, 당신의 작은 선택이 내일의 팀을 만듭니다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팀으로 일하는 이유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을 함께 넘기기 위함입니다. 팀워크는 더 이상 자동으로 작동하는 가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자주, 더 깊이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함께 일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선택하고 있는가.

가볍게, 그러나 깊게. 팀워크는 제도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선택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이 한 발 더 나올지—아니면 한 발 물러설지—그 작은 선택이 내일의 팀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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