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겹쳐진 나의 이야기
최근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마지막 회의 대사를 듣는 순간, 저는 올 3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드라마 속 은중과 상연의 대화는, 어쩌면 아버지와 제가 나눴거나 나누지 못한 대화 같았습니다. 화면을 바라보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5년 동안 병과 싸우셨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함께했다고 믿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가 홀로 견뎌 내신 시간이었습니다. 곁에 있는 듯했지만 정작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떠날 시간을 알고 있는 한 인간의 무게를 이해하려 했지만, 결국 다가가지 못한 채 남은 건 후회였습니다.
드라마 속 대사와 울림
은중: 안 간다고 했잖아? 스위스…
상연: 너는 안 가도 돼.
은중: 가겠다는 거네.
상연: 흐음… 말 못해서 미안해. 근데… 나 너무 아파…
은중: 아직 시간이 있잖아. 이렇게 말하고, 걷고, 숨 쉬고 있는데…
상연: 그럴 수 있을 때 가려는 거야. 내가 아직 나 일 때… 내가 여기 있으면, 끝까지 나랑 있어 주겠다고 했지?… 니가 그럴 거라는 거 난 알아… 근데, 나는 너한테 그거 못 시켜… 엄마가 죽을 때, 난 고통의 끝의 끝을 봤어. 그걸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 난 안다고…
은중: 그래도 있어…
상연: 싫어… 은중아, 나는 죽어… 그걸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도 힘들었어… 나도 살고 싶어… 살 수 있는 가망이 1%라도 있다면, 나도 무슨 짓이든 다 했을 거야… 근데 없어…
은중: 상연아…
상연: 희망이라는 게, 사람을 말려 죽여. 더는 아프지 않고, 내가 누군지 아는 채로 죽고 싶은 게,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고 욕심이야? 하아… 적어도 나한테 고통을 거절할 권리는 있지 않아?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저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지만, 아버지는 훨씬 더 깊은 결심을 하고 계셨던 건 아닐까요? 고통의 끝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했던 마지막 순간. 저는 그 마음을 끝내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이미지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 의 두 주인공을 모티프로 만들었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순간, 서로 다른 감정이 겹쳐집니다 — 남겨진 자의 슬픔과 떠나는 자의 평온,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공감의 여운. 이 빛은 두 사람을 갈라놓는 경계이자, 끝내 서로를 이어주는 마지막 연결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
은중: (독백) 널 혼자 보낼 순 없을 것 같다.
은중: 항공권은 꼭 왕복이어야 돼. 너랑 나 두 사람 다…
상연: 정말로 같이 떠나게 되면, 진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떠나자… 웃으면서… 한 번도 못해 봤어. 우리 둘이서 여행…
은중: 근데 절대 잊으면 안 돼. 나는 끝까지 너랑 같이 돌아오고 싶다는 거… 여행이 뭔지 알지? 떠났다 돌아오는 거야.
죽음을 앞둔 사람은 마지막까지 자신 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남겨진 사람은 끝까지 곁에 있고 싶어 하죠. 이 두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 서로를 향한 사랑은 때로는 더 큰 고통을 낳기도 합니다. 드라마 속 은중과 상연의 대화는, 결국 저와 아버지가 나눴거나 나누지 못한 말들의 울림이기도 했습니다.
남겨진 자의 후회
은중: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렇게 무서울 줄은… 그곳에 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가겠다고 말한 후에야 알았다.
(성당, 은중의 독백)
은중: 저들은 답을 얻었을까?
은중: 아직 못 다한 준비가 남아 있었다. 혼자일지 모른다는 거… 어쩌면 혼자, 돌아와야 하는 길에 대한 결심.
답이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너의 시간을 같이 겪을 게.
이 장면을 보며 저는 병실에 앉아 있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아버지 곁에 있었지만, 사실은 홀로 싸우고 계셨던 그 시간.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공허와 후회. 우리는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그 시간이 오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죽음이라는 문 앞에 서 있다면, 매일 다짐하세요. “나는 후회하지 않겠다.”
순간 순간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시간을 충분히 마주하지 못했을 때의 후회가 더 큰 고통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후회라는 감정은 우리의 서툴고 덜 성숙했던 말과 행동이 만들어낸 가장 큰 고통이니까요.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겪은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도 결코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오늘도 가볍게, 그러나 깊게. 그리고 후회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