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이라는 세계
아마도 누구나 가죽 제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여성들의 옷장에는 크고 작은 가죽 가방들이 여러 개 놓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죽이 어떤 동물의 것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제품으로 태어나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저도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는 가죽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가죽은 다 비슷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가죽은 크게 표피, 진피, 그리고 피하조직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죽 제품은 대부분 진피에서 나옵니다. 이 진피는 다시 풀그레인(Full Grain), 탑그레인(Top Grain), 스플릿(Split)으로 나뉘어 가공 과정을 거친 뒤 제품으로 쓰입니다. 그중 풀그레인과 탑그레인은 진피의 윗부분을 사용한 고급 가죽으로, 명품 브랜드들이 주로 선택하는 소재입니다. 만약 고가의 가방을 구입할 계획이 있다면, 그 가죽이 풀그레인이나 탑그레인인지 꼭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요즘은 스플릿 가죽에 코팅이나 라미네이트를 입혀 겉보기에만 고급스러워 보이도록 만든 제품들이 시장에 많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종류, 성장 환경, 먹이에 따라 가죽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집니다. 소가죽은 크고 단단해 실용적인 가방이나 고급 소파, 자동차 시트에 많이 쓰입니다. 송아지 가죽은 부드럽고 섬세해 명품 핸드백의 주 소재가 됩니다. 양가죽은 가볍고 유연하지만 손상이 잘 가고, 염소가죽은 강인한 질감을 살려 작은 아이템에 자주 쓰이죠. 이렇게 가죽은 단순한 소재를 넘어, 손끝에 닿는 질감과 시간이 남기는 흔적 속에서 살아 있는 언어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본 가죽
처음 가죽을 다루기 시작했을 때 저는 나파(Nappa) 가죽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처음 손끝에 닿는 부드러움, 은은하게 퍼지는 컬러감, 완성된 제품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은 제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앞으로는 이 가죽만 쓰겠다”라고 다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깨달았습니다. 같은 디자인의 가방이라도 어떤 가죽을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송아지 가죽은 세련된 부드러움을, 사피아노 가죽은 단단한 구조감을 강조합니다. 마치 같은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어떤 가죽은 너무 얇아 봉제 과정에서 쉽게 찢어지고, 어떤 가죽은 염색이 잘 되지 않아 원하는 색을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가죽을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고유한 성격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까다로운 성격의 가죽은 그에 맞는 접근 방식을 찾아야만 비로소 본래의 빛을 드러냅니다. 결국 중요한 건, 디자이너가 그 가죽의 개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존중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제품의 디자인과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가죽을 선별하고 다루는 브랜드는 프라다(Prada)라고 생각합니다. 프라다의 핸드백 컬렉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철학이 보입니다. 매 시즌 새롭게 선보이는 대표 제품에는 풀그레인이나 탑그레인의 소가죽, 혹은 양가죽을 주로 사용합니다. 제품을 손에 잡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최고급 천연 가죽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제품들입니다.
다만 최고급 천연가죽은 양면성을 가집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워 첫 촉감은 다른 어떤 가죽과도 비교할 수 없지만, 그만큼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프라다는 이 섬세한 가죽을 오랜 연구와 기술로 가공해, 시간이 지나도 그 감각을 잃지 않도록 재탄생시킵니다. 예민한 가죽을 ‘다루기 좋은 가죽’으로 바꾸는 능력, 이는 오랜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프라다의 사피아노(Saffiano) 가죽. 십자형 엠보 패턴이 특징인 이 가죽의 역사는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는 사피아노 가죽 생산법을 특허 등록하며 프라다만의 독점적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한동안 프라다만이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허를 갱신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흐른 뒤 많은 브랜드가 이 방식을 차용하거나 유사한 ‘텍스처드 가죽(Textured Leather)’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는 이 점이 프라다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죽은 원단처럼 균일하게 찍어낼 수 있는 소재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존재였던 만큼, 개체마다 다르고 완전히 동일할 수 없습니다. 이를 오랜 시간 연구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죽과 삶의 닮음
가죽을 오래 만지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이 소재가 사람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죽은 쓸수록 주름이 생기고, 스크래치가 나며, 색이 변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결점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 흔적이 개성이 되고, 나만의 이야기가 됩니다. 사용자의 손길과 세월이 더해진 만큼, 그 가죽은 오직 한 사람만의 이야기를 담은 유일한 존재가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는 누구나 흠집을 남기고, 예상치 못한 흔적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우리만의 시간과 경험을 기록하는 흔적이라면 어떨까요.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한 매력을 만들어주지 않을까요.
저는 그래서 가방의 흠집 하나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가방이 제 곁에서 함께한 시간과 기억을 떠올리며 이미 제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한 추억이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감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남는 가치
가죽을 다루며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이 제품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일까?”
유행은 빠르게 바뀌지만, 좋은 가죽과 정성스러운 디자인은 쉽게 낡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제 손끝에서 만나는 가죽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또 하나의 기록입니다. 삶처럼 흠집을 품고, 흔적을 남기며, 결국은 함께한 시간을 이야기해 주는 존재입니다.
가볍게, 그러나 깊게.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저는 다시 새로운 가죽을 만집니다.